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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강좌

[아주 특별한 사진수업] 2. 사람의 눈, 카메라의 눈

by 새롬 /조철행 2015. 2. 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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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 특별한 사진수업] 2. 사람의 눈, 카메라의 눈

바라보기 02 - 사람의 눈, 카메라의 눈

사진을 찍을 때 초보자가 저지르기 쉬운 실수는 '어떻게 하면 실제와 똑같이 찍을까?' 하며 애쓴다는 겁니다. 아무리 좋은 카메라도 눈으로 보는 것과 똑같이 찍을 수는 없습니다. 사람의 눈과 카메라 렌즈는 기능이 비슷하긴 하지만 그럼에도 많은 차이가 있기 때문입니다. 설사 렌즈와 눈의 기능이 같다 하더라도 사진이 현실을 똑같이 묘사하는 것은 기계적인 복제일 뿐 그 이상의 의미는 없습니다.

처음 카메라를 들면 누구나 보이는 것과 똑같이 찍으려고 노력합니다. 지나고 보면 참 부질없는 일이라는 걸 깨닫지만 말입니다. 그러나 헛된 노력은 아닙니다. 사진을 공부할 때 반드시 거치는 과정이기 때문입니다.

사람의 눈과 카메라 렌즈의 차이를 비교해볼까요. 먼저 눈의 구조를 생각해봅시다. 눈은 2개입니다. 이는 대상을 입체(3D)로 본다는 뜻입니다. 반면에 카메라 렌즈는 한 개입니다. 즉 렌즈는 평면(2D)을 묘사할 뿐입니다. 시각의 폭인 화각도 사람의 눈이 훨씬 더 넓습니다. 렌즈의 경우, 시각보다 훨씬 더 넓은 180도를 볼 수 있는 초광각 렌즈도 나와 있지만 사물의 형상이 왜곡돼 보이는 단점이 있습니다.

눈은 카메라와 비교가 안 될 정도로 성능이 좋은 자동초점 기능이 있습니다. 자동노출 기능도 뛰어납니다. 밝은 곳에서는 동공이 축소되고, 어두운 곳에서는 확대됩니다. 사람이나 사물을 보는 물리적인 인지과정 또한 매우 빠르게 진행됩니다. 게다가 사람의 눈은 '동영상'입니다. 움직임을 연속해서 볼 수 있습니다. 흘러가는 모든 것을 실시간으로 봅니다.

사람의 눈에는 보조기능까지 있습니다. 냄새(후각)·소리(청각)·맛(미각)까지 거들며 시각정보의 감각적인 완성도를 높입니다. 꽃을 예로 들어 볼까요. 꽃은 눈으로만 봐도 예쁘지만, 향기를 맡으면 꽃을 더욱 생생하게 느낄 수 있습니다. 꽃밭에서 윙윙거리며 날아다니는 꿀벌의 날갯소리도 운치를 더합니다. 꽃을 보는 사람의 심리 상태에 따라 느껴지는 감흥도 더해집니다. 카메라가 어찌 이를 따라갈 수 있을까요.

이렇듯 눈과 카메라는 기능면에서 차이가 매우 큽니다. 카메라가 사람의 눈과 '맞짱'을 뜨자고 덤비는 것은 "계란으로 바위 치기"나 다름없습니다. 그런데도 사진가는 카메라를 들고 끊임없이 눈에게 한판 붙자고 대듭니다. 그런데 결과는 어떤가요. 놀랍게도 막상막하입니다. 미학적인 완성도로 보면 사진이 더 앞선다는 생각이 듭니다. 왜 그럴까요?

적절한 비유일지 모르겠지만 카메라는 눈과 전면전을 벌이면 백전백패입니다. 게릴라전을 펼쳐야 승산이 있습니다. 눈이 가진 태생적인 약점을 끊임없이 파고들어야 합니다. 눈으로 보는 것과 똑같이 찍으려고 한다면 좋은 사진이 나올 수 없습니다. 이는 사진을 시작하는 초보자가 명심해야할 대목입니다.

사진을 '눈과 렌즈의 승부'로 풀어보는 것은 흥미롭습니다. 좋은 사진은 사람의 눈을 이겨야 나올 수 있습니다. 렌즈가 사람의 눈과 싸워 이기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렌즈의 단점을 장점으로 활용하는 역발상이 필요합니다. 렌즈는 사람의 눈보다 화각이 좁습니다. 하지만 특정한 대상에 더 집중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습니다. 사진을 찍을 때 한쪽 눈을 감는 이유도 피사체에 좀더 몰입하기 위해서입니다.

따라서 사진에서는 부분으로 전체를 아우를 수 있는 상징성을 부각시켜야 합니다. 나무를 보여주고 숲을 미루어 짐작하게 하는 것이 사진입니다. 그래서 사진을 '뺄셈의 미학'이라고 합니다.

첫 번째 사진은 전라남도 구례군의 산수유마을에서 찍은 것입니다. 집집마다 골목마다 노란 산수유 꽃이 지천입니다. 광각렌즈를 끼우고 그 모두를 담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여의치 않았습니다. 꽃에 취해 자신도 모르게 흥분했나 봅니다. 달력에서나 보는 진부한 풍경사진 이상의 것을 찍을 수가 없었습니다. 눈으로 보는 것과 렌즈를 통해 보는 것은 다르기 때문입니다. 렌즈를 새로 갈아 끼우고 시야를 좁혔습니다. 컴컴한 대나무 숲을 배경으로 노란 산수유꽃에 햇볕이 쏟아집니다. 그 모습이 마치 불꽃을 닮았습니다. 봄이 아지랑이가 되어 춤추듯 타오릅니다.

눈은 진행형, 즉 동영상으로 대상을 보지만 순간을 포착하는 기능은 카메라가 훨씬 더 뛰어납니다. 과학기술의 발전으로 눈이 감지할 수 없는 수천 분의 1초, 수만 분의 1초까지 잡아냅니다. 이 뛰어난 순간포착 기능으로 흘러가는 동영상 속에 묻힌 순간의 직관을 잡아채야 합니다. 이것이 브레송이 말한 '결정적 순간'입니다.

사진은 시각예술입니다. 그 출발은 뭔가를 보는 것에서 시작됩니다. 눈은 사진의 소재를 제공할 뿐입니다. 눈으로 보는 이미지는 잠시 머릿속에 저장되었다가 시간이 지나면 사라지는 기억으로만 존재합니다. 이는 일정한 양식으로 저장·편집·가공할 수 없는 아주 무질서한 상태의 감각입니다. 눈으로 보는 것과 사진의 차이는 '재료'와 '제품'의 관계입니다.

두 번째 사진은 무안 갯벌의 모습입니다. 갯벌은 조개를 캐거나 낙지를 잡으며 살아가는 어민들에게는 삶의 터전입니다. 질척거리는 갯벌에서의 노동은 힘겨운 일입니다. 해가 지고 어둠이 내리기 시작합니다. 일렬로 서 있는 갯바위가 눈에 들어옵니다. 붉은 노을빛이 고인 물에 반사됩니다. 가족을 부양하기 위해 고단한 하루 일과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는 어민들의 모습이 떠오릅니다. 발걸음이 무척이나 무거울 것 같습니다.

사진은 무질서한 상태 속에서 널려있는 무수한 이미지 가운데 의미 있는 한 장면을 포착해 미적으로, 의미론적으로 가공한 것입니다. 사진의 좋고 나쁨은 카메라의 성능이 아닌, 작가로서의 상상력과 통찰력, 미적 감각에 달려 있습니다. 눈에 대한 카메라의 경쟁력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사진을 실제와 비교하는 것은 참 부질없는 일입니다. 흔히 사진이 "잘 나왔네." "못 나왔네." 하는 말은 사진을 현실과 비교해서 하는 말입니다. 사진이 못 나왔다며 울상을 짓는 사람에게 흔히들 원판 불변의 법칙을 운운하며 농담을 합니다. 그러나 이는 잘못된 표현입니다.

원판 불변의 법칙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원판'은 사진을 찍는 사람에 따라 다르게 나타납니다. 기술적인 면만을 이야기기하는 것은 아닙니다. 작가의 표현 형식에 따라 사진은 얼마든지 원판을 바꿔놓을 수 있습니다. 어찌 보면 사진은 거짓말을 할 수밖에 없는 매체입니다.

사진기자 주기중

[편집자 주] 한국의 사진 인구가 1천만 명인 시대입니다. 날로 좋아지는 스마트폰의 화질과 손쉽게 구할 수 있는 전문가용 카메라의 발달은 '사진의 전(全) 국민화'를 불러왔습니다. 기획시리즈 '아주 특별한 사진수업'은 사진에 입문하려는 사람들이 사진의 기본을 제대로 닦기를 바라는 사진기자의 마음에서 시작되었습니다. 인간과 사회에 대한 깊은 통찰로 사진에 생명과 영혼을 불어넣기 위한 이 특별한 수업은 매주 수요일 열립니다.

『아주 특별한 사진수업』- 사진가 주기중이 들려주는 좋은 사진 찍는 법(소울메이트)

 

 

 

 

작성일시 : 2014-07-23 11:02:34